[조은아의 내 인생의 책](2) 리흐테르 회고담과 음악수첩| 브뤼노 몽생종
어느 불복종자의 1095시간
프랑스어판으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Richter, L’insoumis 리흐테르, 불복종자.” 20세기 가장 위대했던 피아니스트 스뱌토슬라프 리히터의 인터뷰를 브뤼노 몽생종이 재구성했다. 영문판으로는 또 수수께끼(Enigma)란 제목을 갖고 있다. 음악과 무관한 활동을 일절 배격했으며 자신에 관해서는 줄곧 침묵을 지켜왔던 이 거장의 이야기는 ‘수수께끼에 휩싸인 불복종자’와 다름이 없다.
그의 연습에 관한 여러 풍문은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접하고 있었다. 음악가 입장에선 경이를 넘어 절망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연주 여행을 떠날 때마다 하루 14시간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요구했고, 음악회를 마치고 나서도 이미 연주한 곡을 다시 연습하느라 밤새도록 무대를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리히터는 그런 풍문이 다 헛소리라고 반박한다. 음악회가 끝난 후에도 연습했던 경우는 다음날 다른 프로그램의 공연을 앞두고 있을 때만 다급한 점검을 위해서였고, 자신은 ‘하루에 3시간씩 연습’하는 것을 일상의 순항 속도로 삼아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하루에 3시간씩 연습하려면 1년에 1095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연주 여행을 하다 보면 아예 연습하지 못하는 날도 많다. 이럴 땐 소급해서 연습해야 한다. 그래서 종종 12시간이 필요하다.” 그럼 그렇지. 헛소문이란 반발에 잠시 잠깐 혹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때부터였다. 나 역시 일상의 순항 속도를 위해 스톱워치로 연습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깨달았다. 1095시간은 불복종자만이 도달할 경지 아닌가.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242257025&code=960205#csidxa8f8d2fbd854ebb8c6ee2a38a0b65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