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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겨레 신문 : 씻김굿
| 2018·04·04 22:00 | VOTE : 132
어제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4.3사건 추념 음악회' 리뷰를 한겨레 신문에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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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회장엔 동백꽃 배지를 가슴에 단 청중들로 북적거렸다. 로비에선 제주 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이 상영되고 있었다. 순수하게 베르디 음악을 감상하러 온 사람들보단 70년 전 제주를 기억하려는 청중들이 수적으로 상당해 보였다. 그러므로 음악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일종의 연대의식이 가슴에 핀 동백꽃 마냥 무리를 이루었다. 섬 속에 고립되어 있던 아픔, 그 침묵의 역사를 이제 음악으로 확성(擴聲)할 순간이었다.

레퀴엠은 죽은 자를 위로하는 진혼곡이다. 베르디는 오페라의 거장답게 4명의 독창과 혼성 4부 합창을 통해 레퀴엠을 망자(亡者)의 오페라로 전환시켰다. 여느 작곡가처럼 죽음의 의미를 종교적으로 관조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오페라의 주인공처럼 죽어가는 당사자를 등장시킨다. 죽음을 앞에 둔 당사자는 절규한다. “나를 구하고, 나를 해방하며, 나를 기억해 달라.” 70년 전 억울한 떼죽음을 당해야 했던 제주의 핏대높인 외침이 음악과 겹쳐 울렸다.        

이 레퀴엠을 가장 강렬하게 특징짓는 디에스 이레(Dies irae)는 첫머리-중간-마지막 등 3번이나 등장하며 전체 작품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큰 북을 연주한 타악 주자는 혼신의 힘을 다해 디에스 이레에 담긴 격렬한 진노와 준엄한 심판을 강화시켰다. 오케스트라와 중창이 맞물리는 대위법적 악절은 연주기교와는 별도로 멜젓처럼 엉켜 물크러졌다는 제주공항의 시신을 떠올리게 했다. 마지막 부분에선 망자와 산자를 한데 불러 위로하는 씻김굿과 같았다. 베르디가 의도치 않았더라도 모든 음악적 장치들이 바닷섬에 수장된 고통의 세월을 뭍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불러내는 음악의 힘이 공연장 가득 일렁거렸다.

이 공연은 애초 묵직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다. 4.3의 추념에 동의하는 음악가만 규합된 프로젝트성 음악회로 오케스트라는 자신을 ‘사진 한 장 없는 악단’이라 소개하기도 했다. 공연의 운명이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일지 아직 알 수 없다. 음악은 본디 사상과 이념의 경계를 무력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으나, 이 공연은 그 경계를 강화하지 않았는지 역시 모를 일이다.

필자가 소속된 박물관에서도 제주 4.3을 주제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이날 아침엔 모 신문의 사설로부터 ‘남로당 폭동을 떠받치는 박물관’이라 난타를 당한 터였다. 이렇듯 아픔의 평화로운 치유를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고도 멀다. “죽은 이는 부디 평화로이 눈을 감고 산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제주 하귀리 영모원에 새겨진 추모 글처럼, 우리 삶에 경계를 허문 평화가 깃들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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